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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California!


믿을 수가 없는 이번 표절시비

몇 달 전이었던 것 같다. 표절시비에 대한 기사를 보고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경란 작가가 '혀'로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조경란은 내게 소설에 대한 희망을 심어 준 사람이었다. 다작을 하는 작가가 아니어서 그녀의 작품을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소설가의 꿈을 키우며 공부하던 시절, 책방에 쭈그려 앉아 읽던 그녀의 '식빵 굽는 시간'은 신선한 한국 소설에 대한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그녀의 신선한 소설을 읽었던 사람들이라면, 내 마음을 알 것이다. 당시 한국 현대 소설은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소설의 소재들이 전쟁에서 노동자들의 애환, 그리고 어릴적 기억에 기댄 성장 소설에서 뭔가 새로움을 찾고 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런 갈증을 김영하와 조경란이 나란히 등장해서 시원하게 해갈시켜주었다.
특히 조경란의 담백하고 간결한 글은 한국 소설이 일본 소설의 감성을 이겨낼 수 있을 거란 희망까지 안겨 주었다.

나는 내가 꿈꾸는 소설의 기반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녀가 표절을 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표절은 영혼을 훔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나는 일부러 두 소설을 읽지 않았다. 읽고 나면 충격이 너무 클 것 같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혼자 상상하기 싫어서였다. 누군가를 의심하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를 욕하고 싶지도 않다.
또 분명 두 작품 중 하나는 표절이란 이야기인데,
가짜를 가려내기 위해 중국산 짝퉁 초코파이와 오리지날 우리나라 초코파이를 모두 먹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입맛을 버리기 싫다.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누가 하는 것인가!


하지만, 결국 둘다 피해자다. 조경란씨건 주이란씨건 모두 피해자다.

소설은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 소설가가 되지 못하고, 소설가가 되기 위해 습작을 하는 사람이지만
매번 습작을 할때마다 내 영혼이 토해내지는 것 같은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미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 내 소설을 다듬어 주고 가르쳐 주는 선배가 '다 지워라'하는 소설도 지우지 못하고 그대로 남겨 두고 자꾸 고치고 또 미련을 갖게 된다.

따라서 표절을 한 사람이건 자신의 작품을 빼앗긴 사람이건,
둘 다 괴롭고 힘들 것이다.

왜냐면 둘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기에, 한쪽은 다른 한쪽이 얼마나 공들여 글을 쓰고 퇴고 했을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 모두는 그런 힘든 작업을 알기에, 서로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반응하는 출판계는 물론 문단의 어르신들 그리고 동료 작가들의 반응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에 끼고 싶지 않다니,
그리고 시비가 붙은 작품에 상을 주다니,

이건 조경란씨, 주이란씨를 모두 슬프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런 반응들은 미운 놈 떡하나 더 주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떡 먹고 체할 시점에 큰 떡을 하나 입에 물려 준다고, 그 떡이 잘 넘어 갈 수 있겠는가?
또 어르신들이 억지로 먹여 주는 떡을 거절 할 수 있겠는가?
주이란씨 역시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주이란씨도 후배이다.
우리 나라는 신춘문예는 물론 문학잡지에 등단을 해야지만 작가로 인정해 준다. 그런데 이런 힘겨움을 이미 겪은 작가들은 신인 작가들에게 그리 따뜻하지 않다. 본인도 어려움을 겪었으니, 힘겹게 공부하는 후배들을 생각해 줄만하건만, 더욱 혹독하고 매정하다.
시집살이 혹독하게 겪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더 학대하는 것처럼.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주이란씨, 조경란씨 모두 피해자다.
문단은 왜 이 문제를 더 베베 꼬고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연예부 기자들이 달라 붙어서 사건을 파헤쳐 주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모두다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입을 굳게 다물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
사실, 이 사건은 황석영 선생님과 이문열 선생님의 표절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단지 표절시비에 대한 화두만 던져진 이전의 사건들과 달리,
당사자가 용기 있게 커다란 바위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대단하다 싶고, 어찌보면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언제부터 우리의 소설가들이 이렇게 일그러지기 시작한 걸까.
왜 이래야만 하는 걸까.

도대체 해답은 어디에 있는 걸까.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작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독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슬프다.



솔로몬의 재판을 떠올리며, 진실을 기다려 본다
어디를 가든, '협회'라는 곳이 가장 무섭고 '단체'라는 곳들이 제일 치사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런 곳들이 뒤에 서 있는 것을 알면서도 힘차게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주이란 작가를 보면서, 굉장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경란 작가는 조용하다. 왜 일까?

그러다 문득 솔로몬의 재판의 일화가 생각났다.
한 아기를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던 두 엄마 이야기 말이다.
그때 솔로몬은 진정 자신의 자식이라면 더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결국 시시비비를 가려냈다.

한쪽이 시끄럽다고, 또 한쪽이 조용하다고 애착을 가려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왜냐면 두 작가 모두 그 작품을 쉽게 쓰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진실이 밝혀진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문단에서, 작가 선배들이 먼저 발벗고 나서서
일들을 정리정돈해야 할 큰 숙제가 남겨져 있다.


제발, 숙제를 마쳐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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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명랑한 소설가를 꿈꾸는 Paper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