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마가 뿔났다’에서 1년 가출을 선언한 엄마 때문에 말들이 많다. 인터넷에 올라온 한 관련 기사를 보니 엄마들의 가출이 신드롬화 되고 있다고도 한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딸로 성장하여,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던 엄마들이 이제는 좀 쉬고 싶어 한다고.
하지만 ‘가출’까지는 좀 심한 것이 아니냐는 평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엄마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을 버리고 가출을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보니, 갑작스런 엄마의 가출로 시작하는 영화 한편이 생각났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1970년대 미국의 뉴욕을 무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좀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엄마’는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대한민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엄마가 뿔났다’의 엄마와 같은 항변을 한다.
엄마의 가출로 시작하는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메릴 스트립과 더스틴 호프만이 열연한 작품이다.
영화 ‘크레이머대크레이머’는 1970년대 미국 뉴욕을 무대로 펼쳐지는 영화로, 변해야 할 미국 사회의 단면을 한 부부의 이혼을 통해 잘 그려낸 작품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다짜고짜 가방을 꾸려 집을 나가는 크레이머 부인, ‘Mrs. 크레이머’의 극단적인 행동으로 시작된다. 회사에서 직장 상사와 농담 따먹기를 하던 크레이머는 회사에서 확고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지만, 아내 크레이머는 함께 기뻐하기는커녕 ‘나는 당신과 살 수 없어요’라며 집을 나가버린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쫓아가서 왜 그러냐며 황당해하던 크레이머.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어쩌냐며 아내의 발목을 잡아보지만, 아내는 ‘내가 없는 게 지미에게 나아요’라는 말을 매몰차게 던지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엄마가 가출한 뒤, 아빠는 아이와 둘도 없는 사이로 가까워지게 된다.
영화의 대부분은 어처구니없는 아내의 가출 이후 크레이머가 돈 벌어다주는 '아빠‘에서 돈 도 벌어다주고 아이도 돌봐주는 아빠의 역할을 찾아가는 일상을 보여준다. 아내는 간간히 아이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다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하기보다는 ’엄마도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보내며 아이를 설득시키려고 애를 쓴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는 그리워했던 엄마에 대해 점점 시들해지고 아빠와의 삶에 익숙해져 간다.
그러던 중 아내가 불쑥 나타난다. 자신을 새롭게 되찾았다며 기뻐하던 아내는 아이까지 다시 찾고 싶다고 양육권 소송을 벌인다.
법정에 선 크레이머 부부. 법정은 아이를 두고 집나간 엄마의 손을 들어준다.
여기서 잠깐! 만약 대한민국에서 이런 상황에 양육권 소송이 벌어진다면 아이는 누구에게 보내질까? 나는 아빠가 키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크레이머는 잘나가는 직장도 가지고 있는데다가 아이를 버리고 가출 한 것은 크레이머가 아니라 크레이머의 아내이지 않은가! 그런데 1만5천불이라는 거액의 소송료를 요구하는 변호사 말이 크레이머가 불리하다는 황당한 말을 한다. 아이가 어릴수록 엄마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가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영화는 크레이머에게 더 심한 환경을 제공한다. 머피의 법칙처럼 크레이머는 회사에서 잘리게 되어 더욱 난처한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 회사에서 크레이머를 자른 이유는 근무태만인데, 아이 보느라 회사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크레이머는 이혼 소송에서 불리해질까봐, 조건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다시 취직을 하게 되지만, 법원에서는 아내의 손을 들어 준다.
엄마는 단지 자신을 찾고 싶어 할 뿐이다
이 영화는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소 우리와 다른 정서로 인해 당황스러운 장면과 결말 등이 눈에 띈다. 그러나 법정에서 아이를 두고 가출한 자신에 대한 항변을 하는 크레이머 부인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2008년 현재 방영되고 있는 ‘엄마가 뿔났다’의 가출한 엄마의 이야기와 사뭇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1979년 미국 뉴욕에서 가출했던 영화 속 엄마의 항변은 다음과 같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가정에 충실할 것을 원했고, 처음에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내 삶이 없는 삶이 싫었다. 그래서 집에서만 있기 싫어 일을 하고 싶다고 하자, 남편 왈, 당신이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보모를 두느니 그냥 당신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낫다고 했다. 나는 돈을 벌려고 한 게 아니다. 내 자신을 찾고 싶었다. 누군가의 딸이기만 했던 내가, 결국 누군가의 아내와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억눌린 듯한 생활에 점점 심리가 불안해졌고, 결국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서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것 같아 아이를 집에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아보니 나는 멀쩡하다고 했다. 사람이니까, 누구나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고, 그런 감정은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서 이제 다시 아이를 찾고 싶다. 나는 뉴욕의 유명한 회사에 디자이너로 다시 일하고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굉장히 인상 깊다. 크레이머 가족이 살던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끝장면이 연출되는데, 그곳은 영화가 시작될 즈음, 집을 나서는 아내가 서 있던 그 엘리베이터 안이기도 하다.
아이를 양보하겠다고 눈물을 보이던 아내가 같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편에게 자신의 모습이 어떠냐고 묻는 장면은 자신의 생활을 확고히 가지게 된 아내의 전반적인 모습을 묻는 듯하여 인상 깊었다.
결국 가족은 해체되었지만, 아내의 ‘자아’찾기에 대해 전적으로 아내에게 잘못을 추궁하지 않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해 가족 파괴적인 페미니즘에 대한 경고를 한다고도 하는데, 그보다 시작부터 엄마에게 단지 ‘엄마’만이 아닌 ‘사람’으로서, ‘사회인’으로서의 자리를 내주었다면 끝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뿔난 엄마는 ‘가출’이 아닌 ‘자신의 삶’을 원한다
영화에서 가출했던 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엄마가 뿔났다’의 엄마도 가출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찾고 싶은 거라고 생각한다. 여태껏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엄마로 살았던 자신에 대한 회한과 미련 그리고 답답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달라져서 여자도 자신의 길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는 됐지만, 정작 자신은 그렇지 않음에 대한 심리적인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이 드라마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굉장한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아마 그 결론은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여자의 삶으로 비추어질 것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에 끼칠 영향 또한 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자신만의 세계를 어떻게 찾을까? 세상이 변한 것은 알지만 이제와서 ‘알파걸’이 되기 힘든 우리의 엄마는 어떻게 ‘자아’를 찾을지, ‘엄마가 뿔났다’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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